청도읍성은 청도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화양읍 선상지에 축성된 남고 북저의 석축성이다. 지방에 읍민을 보호할 목적으로 쌓은 성곽으로 고려 때부터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규모는 둘레가 약 2km, 높이가 1.7m이다. 산성과 평지성과의 중간형에 해당하는 평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네모꼴이다. 성벽은 자연석을 이용해 쌓은 협축벽이다. 임진왜란 때 동, 서, 북문이 소실되고 성벽이 파괴되었다. 또한 일제강점기 읍성 철거 정책으로 인해 성벽이 다시 헐리고 문루도 제거되었다. 현재는 성벽 일부와 기저만이 남아 있어 성터 하부의 축조 형태도 알 수 없다. 청도군에서는 매년 3월 [청도읍성 밟기] 행사를 개최한다. 청도읍성 밟기는 부녀자들이 성곽 위에 올라가 산성의 능선을 따라 밟으며 열을 지어 도는 풍속으로, 액운을 쫓고 무병장수하며 극락왕생 한다고 한다. 예부터 청도읍성을 한 바퀴 돌면 건강해지고, 두 바퀴 돌면 오래 살고, 세 바퀴 돌면 소원성취한다는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198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 건물로, 도주는 청도의 다른 이름이다. 1670년(현종 11)경 건립되었으며, 정당(政堂)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어 지방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하였고, 좌우 익사(翼舍)에 접객시설을 갖추어 이곳을 방문하는 관원이 머물 수 있도록 하였다. 청도의 진산인 오산(鰲山)의 소구릉 등성이에 옛 동헌의 자취가 남아 있고, 그 우측 밑으로 객사가 서향으로 자리하였는데, 현 도주관은 정당과 우익사만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평삼문과 정당은 일축선상에 놓여 있고, 평삼문 우측에 5칸 곳간이 우익사와 대향하여 서 있다. 마당의 우측 담장쪽에 역대 군수들의 선정비(善政碑)가 옮겨져 있고, 우익사 뒤쪽에 일각대문을 내었다. 좌익사와 그 앞에 있던 관리사는 한일합방 후 철거되었다. 정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막돌덤벙주초 위에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운 외 1출목의 약화된 주심포계열집으로 상부가구는 5량가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우익사는 정면 6칸 측면 3칸인데, 구조수법은 정당과 같으며 지붕선이 겹쳐지는 부분에는 맞배지붕을, 익사 단부는 팔작지붕으로 꾸민 겹처마 집이다. 좌측 3칸은 툇마루 1칸 뒤쪽에 분합문으로 칸막이를 한 3칸 온돌방을 두었고, 우측 3칸은 전후와 우측이 개방된 마루를 꾸미고, 상부 가구를 견실하게 짜 올려 깊은 공간감을 배려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조선 중기 객사 건물의 평면 기능과 입면적 특징의 일단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1568년(선조 1)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청도의 고평동(古坪洞)에 창건하였다. 1626년(인조 4) 군수 송석조(宋碩祚)가 화양면 합천리로 옮겼고, 1683년(숙종 9) 군수 홍수량(洪受湸)이 중수하였다. 그 뒤 1734년(영조 10) 군수 정흠선(鄭欽先)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843년(헌종 9) 군수 송계백이, 1929년 군수 최병철이 각각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978년 군수 최형수(崔亨洙)가 명륜당을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각 4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7칸의 명륜당, 각 5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5칸의 사락루(思樂樓), 삼문(三門), 동문(東門)과 서문(西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맡고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조선 시대 관아 건물의 하나로 청도 지방의 일반 행정 업무를 보던 중심 건물이다. 동헌은 아사(衙舍), 군아(郡衙), 현아(縣衙), 시사청(視事廳)으로 불리는데, 생활 처소인 내아(內衙), 즉 서헌(西軒)의 동편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동헌이라고 부른다.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청도척화비는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 1871년(고종 8)의 신미양요를 겪은 후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서구 열강의 침입을 경고하고, 쇄국 정책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하여 1866년에 비문을 짓고, 1871년 전국 각지에 세웠던 여러 개 척화비 중의 하나이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후 흥선 대원군이 몰려나고 문호를 개방하면서 대부분 철거되었으나, 경상북도 내에는 경부·구미·청도 등지에 일부가 남아 있다. 청도척화비는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1713년(숙종 39) 박상고(朴尙古) 등이 축조하였으며, 남한지역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석빙고이다.
보물